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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Evgeni Mravinsky / Tchaikovsky: Symphony No.5, Brahms: Symphony No.4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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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DVD] Evgeni Mravinsky / Tchaikovsky: Symphony No.5, Brahms: Symphony No.4
판매가 0
제조국가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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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릿 A
레이블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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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 List

지역코드: 3 지역
녹화방식: NTSC
화면비율: 4:3
오디오형식: PCM Stereo
자막: 한국어,영어

영상으로 부활한 지휘대의 철인, 므라빈스키

지휘자에 관하여 :
`음악 없이 사는 것이 가능할까? 음악은 인간의 1차적인 필요물에 속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음악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을 저버리는 일이다. 나는 음악이 지니고 있는 초월적인 힘을 굳게 믿고 있다.` -예프게니 므라빈스키

진실로 그러했다. 일생을 구 소비에트 체제의 닫힌 공간 안에서 지냈으나 그는 예술과 철학에 대한 굳건한 신념으로 삶을 살았다. 어느덧 고고한 전설이 되어버린 이름, 예프게니 알렉산드로비치 므라빈스키. 명실공히 러시아 음악계를 대표했던 대들보요,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중 하나로 손꼽히는 불멸의 거장이다. 19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 마린스키 가극장의 주역 성악가였던 예프게니야 콘스탄티노바를 이모로 두었던 므라빈스키의 가족 환경은 음악적이었다. 여섯 살 나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이 때 관람한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공연으로 차이코프스키 음악과 처음 조우, 큰 감명을 받았다. 과학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십대 후반 페트로그라드 대학에 들어가 자연과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1920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세가 기울자 소년 가장이 된 므라빈스키는 대학을 그만두고 집안 생계를 꾸리기 위해 국립 발레학교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일하게 된 것이다.
1924년, 그는 체계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기 위하여 레닌그라드 음악원에 입학했다. 작곡을 수학하다 이내 지휘과로 옮겨 당대의 명 지휘자 니콜라이 말코 및 알렉산더 가우크에게 지휘법을 사사했다. 1931년, 마린스키 가극장의 부지휘자로 임명되어 성심으로 근무하던 므라빈스키는 1937년 11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을 초연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이 콘서트의 대성공으로 그는 일약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듬해 9월 개최된 제1회 전 소비에트 지휘 콩쿠르에 우승한 므라빈스키는 마침내 레닌그라드 필의 상임으로 취임했다. 장장 반세기에 걸쳐 긴밀하게 유지됐던 황금 콤비가 출발한 것이다. 그는 강력한 리더십과 혹독한 트레이닝으로 맡은 오케스트라를 순식간에 세계 최정상급 레벨로 올려놓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도래한 정치적 해빙 무드를 타고 1956년 므라빈스키는 서방 세계에 그 실체를 드러냈다.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순회 공연은 가히 핵 폭풍과 같은 충격으로 서구권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후 30여 차례에 걸쳐 유럽과 일본, 미국 등지에서 콘서트를 가지며 비평가와 청중들로부터 선풍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므라빈스키의 음악 세계는 진실로 독보적이었다. 그는 러시아에 근대적 지휘법을 최초로 도입, 신시대의 방법론으로 정립해낸 선구자였다. 이탈리아의 거장 토스카니니가 그랬듯이 말이다. 과잉된 센티멘털리즘을 뱉어낸 명석한 곡 읽기, 고속으로 질주하는 와중에서 유지되는 질서정연한 앙상블, 치밀하고 견고한 조형미 등이 그러한 요소이다. 그렇다고 해서 므라빈스키의 연주가 무미건조했다는 말은 아니다. 객관이란 기치를 드높이면서도 특유의 칸타빌레를 풍부하게 살려냈던 토스카니니처럼 므라빈스키 역시 독자적인 수법으로 슬라브 민족 본연의 특질을 최대화시켰다. 무쇠로 주조한 듯 강인한 음형, 엄청난 다이내믹의 대비, 명암의 극단적인 콘트라스트가 혼연일체로 합치되어 처절하기까지 한 사운드를 일궈냈다.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악곡의 핵심을 향하여 직선적으로 돌격하는 그의 음악에선 화염 같이 작렬하는 백열적 에너지와 대륙적인 스케일이 뿜어져 나왔다. 스코어를 자신의 주관에 따라 해석하면서도 그것을 엄정한 표현으로 연주해내는 경이로운 집중력. 이것이야말로 므라빈스키 지휘 예술의 키 포인트일 것이다.
그는 음악 외에는 무지한 기능공이 결코 아니었다. 평생을 레닌그라드 안에서 보냈으면서도 몇 개 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할 줄 알았고, 그리스·로마 시대의 자연철학에 관심이 깊었으며, 시문학을 사랑했던 지성인이었다. 단지 음악에 있어서만 적당한 타협을 용납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레퍼토리 면에서도 차이코프스키나 쇼스타코비치 등 자국 음악은 물론 모차르트, 브람스, 슈베르트, 브루크너 등의 독일계 관현악에서 시벨리우스, 드뷔시, 바르토크, 힌데미트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아울렀다. 1983년 레닌그라드 필 창립 100주년 기념제를 주관한 뒤, 거인의 체력은 급속하게 감퇴의 길을 걸었다. 결국 노장은 1988년 1월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운명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치료 시 빈 악우협회 대표가 찾아와 마에스트로의 음악에 감사하다며 협회 측에서 병원비 전액을 지불하겠다고 한 에피소드는 그가 러시아를 뛰어넘어 '전 세계의 음악가'였음을 증명해주는 일례일 것이다.

영상에 관하여 :
므라빈스키는 레코딩을 혐오했다. 스튜디오에는 1961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2번> 음반 작업을 위해 들어간 뒤 일절 발길을 끊었으며, 라이브 녹음 또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레코딩을 애써 만들어놓으면 이를 소거하라 요구하기까지 했다. 그러한 기피증세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1978년 빈 예술주간 콘서트에서 일어난 해프닝이다. 연주회 실황을 녹음하려는 오스트리아 방송국 관계자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한 것이다. 재차 간청을 하자 므라빈스키는 마이크가 본인의 시야를 건드리지 않은 위치에 설치된다면 허락하겠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 박스 멀찌감치 설비가 장치되어 가까스로 레코딩이 성사됐다. 반면 영상물에 대해서는 태도가 협조적인 편이었다. 인터뷰, 리허설, 실연을 촬영하는 데 비교적 순순히 응하였다. 1940년 차이코프스키 '꽃의 왈츠'에서부터 1984년 4월 쇼스타코비치 <12번> 실황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분량의 필모그래피를 확보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본 DVD는 므라빈스키란 인물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최적의 재료를 제공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필름의 제작시기가 거장 최전성기인 1973년이라는 것이다. 브람스 <4번>은 과거 일본 군소 레이블에서 비디오 테이프 포맷으로 단 한 차례 발매된 적 있던 필름. 차이코프스키 <5번>은 기존에 알려져 있는 1982년 리허설 영상이나 1983년 연주회 영상과 중복되지 않는 최초로 공개되는 희귀한 필름이다. 둘 다 일본 투어를 떠나기 직전인 1973년 4월말 레닌그라드 필 대강당에서 공연된 콘서트 실황을 촬영한 것이다. 의자에 앉아 맨손으로 모션을 작게 취하던 말년의 영상과 달리 70세 노목의 자태는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고 단정하다. 수척하게 깡마른 몸매, 무표정한 여윈 얼굴, 쏘는 듯 형형한 안광, 가슴의 훈장과 함께 절도 있게 움직이는 근엄한 제스처. 그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명확한 바통 테크닉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영상의 두 번째 가치는 므라빈스키가 즐겨 지휘했던 레퍼토리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이다. 특히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은 거장이 생애 내내 제일 많이 지휘했던 작품이었다. 콘서트 리스트를 훑어보면 1930년부터 1987년까지 최소한 133회나 이 곡을 연주했음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있어 차이코프스키 <5번>을 지휘한다는 것은 단순히 교향곡 한 편을 소화해낸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독일의 거인 푸르트벵글러가 베토벤 <5번>에 대해 집착한 것처럼 말이다. 차이코프스키 <5번> 공연은 므라빈스키 자신의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부단히 확인하는 작업이자, 세월에 따라 변화하는 텍스트 해독법을 가늠하는 시금석이었다. 현재 알려져 있는 청음용 전곡 음원이 무려 열세 종에 달하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브람스 <4번>도 거장이 무척이나 좋아했던 곡이었다. 레퍼토리가 극도로 축소된 최만년에도 잊지 않고 종종 무대에 올리곤 했다. 1987년 3월 6일 가진 라스트 콘서트에서 지휘한 곡목이 다름 아닌 브람스 <4번>이었다.
본 DVD의 세 번째 메리트는 두 작품을 연습하는 리허설 장면 및 작품에 관해 논하는 므라빈스키의 인터뷰가 충실히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브람스 <4번> 종악장 파사칼리아에서 나열되어 나가는 각 변주곡의 독자성을 부각시키는 것이야말로 전체적인 통일감을 낳는다는 그의 주장은 실로 정곡을 찌르는 혜안의 발로이다. 그리고 실연만큼이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리허설. 므라빈스키는 매서운 자세로 단원들을 질타, 음표 하나 하나의 길이와 세기를 세심하게 가다듬으며 파사칼리아 악장을 그 어느 누구보다 비통하고 절박하게 조각해낸다. 차이코프스키 <5번> 필름의 앞부분 대화도 흥미진진하다. 이 교향곡을 처음 지휘했을 때의 회고도 인상적이지만, 므라빈스키의 차이코프스키 <5번>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는 부분은 그의 팬이라면 꼭 시청해야 한다. 그는 피날레를 화려한 승리의 행진으로 보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5번> 연주의 중요한 관건은 비극성과 일정한 박동감이라는 므라빈스키의 지적은 시대를 뛰어넘는 진실을 담보하고 있다.


작품에 관하여

브람스
교향곡 4번 E단조, Op.98
<교향곡 3번>이 종결된 다음해인 1884년 여름, 브람스는 슈타이어마르크의 뷔르츠실라흐에서 휴양을 취하면서 새로운 교향곡의 작업에 들어갔다. 일단 전반 두 악장을 쓰고, 이듬해 남은 악장을 완결했다. 노년에 이른 작곡가의 고독한 심경이 악절 깊숙이 투영되어 있는 걸작으로 고풍스러운 스타일의 관현악법과 곡 전체에 드리워진 짙은 우수가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다. 초연은 작품이 완성된 해인 1885년 10월 25일 작곡가 본인의 지휘에 마이닝겐 궁정 관현악단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1악장은 '알레그로 논 트로포'로 소나타 형식. 서주 없이 현악군이 애절한 분위기의 제1주제를 연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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