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인상깊은 공연을 통하여, PC 통신의 채팅방을 통하여, 어느새 한국 언더그라운드 록계의 강자로 훌쩍 부상해버린 노이즈가든의-그들 자신에게나, 그들의 팬임을 자처해 온 대중들에게나 공히-'대망'의 데뷔작.

곡 만들기부터 제작에 이르기까지 순수한 국내 기술로 이루어진 신 개발 록 사운드. 때문인지, 영어 가사로 잘 알려져 있던 그들의 '라이브 무대 히트곡'들은 모조리 우리말 타이틀과 가사로 개작되었다. 그러나 '신토불이'의 거창한 명제 아래 그것을 고무적인 현상으로 바라보기에는 다소간 아쉬움이 남는데, 발음 체계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발성의 미묘하게 변질된 뉘앙스는 면밀한 관찰을 요하는 부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대단히 명쾌하고 기분좋은 출발이다. 그런지의 심상을 바탕으로 하는 복고적인 록 사운드의 매력은 현대적인 사운드 메이킹의 수혜를 십분 활용하고 있어서, 그 전체의 이미지는 깊은 속내를 담은 묵직한 울림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자신의 독자적인 톤 감각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윤병주의 기타 워크는 예상외로 편안하게 라인을 이끌어 가고 있으며, 박건의 보컬 파트는 당초 예상의 기대를 넘어서는 호연으로 그에 답하고 있다.

어디선가 들은 듯한 사운드 패턴과 이미지의 편린들이 저 구석에서 은근슬쩍 머리를 쳐들고 있지만, 앨범 전체를 순환하고 있는 에너지의 흐름은 그들만의 독특한 위상을 주장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팽팽한 텐션감을 유지하고 있다. '소음의 정원' 속으로의 첫 걸음. 노이즈가든이 지향하는 소음의 진실이 이런 것이라면, 번드르르한 컴퓨터 사운드와 달짝지근한 멜로디에 온 정신을 내맡긴 '방송 히트곡'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이 앨범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접경 지대에 존재하는 아이러니이다.

01. 나는
02. 기다려
03.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04. 미련
05. 우주꽃 사슴
06. 말해봐
07. 유혹
08. 죄송합니다
09. 8월
10. 동정
11. 묻지 말아줘
12. 타협의 비